■ 프랜차이즈 미술관의 전형
센트럴 팍 동쪽에 자리한 하얀색의 나선형 건물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다. 인근 공원의 차분함과 어울리는 이곳은, 독특한 구조와 세련된 외관 디자인으로 격조 높은 우아함을 자랑한다. 반세기에 걸쳐 뉴요커뿐 아니라 전 세계 관람객들을 매료시킨 구겐하임은 이미 건축물 자체가 거대한 예술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 라이트가 그린 유기적 건축의 표상
설계 당시 나선형 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방식과, 시원하게 트인 중앙 로툰다 아래로 자연 채광이 드는 설계는 가히 미술관 건축의 혁명과도 같았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유기적 변화, 예술의 무한성, 그리고 관람의 편이성에는 이 건물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철학이 담겨 있다.
1939년 비대상 회화 미술관으로 시작된 이곳은, 1959년 라이트가 설계한 건물에 들어오며 이름을 구겐하임으로 바꾼다. 일찍부터 유럽 추상회화를 다수 수집하며 남다른 발전상을 그려온 이 미술관은 1990년대 카리스마 관장으로 알려진 토마스 크렌스의 등장에 의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 기간 중 컬렉션의 양적 증가는 물론, 기부금과 관람객 수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동반된 것이다. 특히 독일, 스페인, 아랍에미리트 등에도 잇따라 분관을 열어 남다른 확장 전략까지 선보였다.
크렌스의 기획력으로 시대 감각을 그리다
무엇보다 크렌스 관장이 뛰어난 점은 탁월한 기획력이었다. 초창기 그가 선보인 저돌적이며 획기적인 미술 접근법은 경영적인 면만이 아니라, 각종 기획전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할리 데이비슨 114대를 선보인 ‘모터사이클 전’을 비롯해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미술사적 관점으로 격상시킨 ‘아르마니 전’, 중국 고대 유물의 대대적인 공개로 화제를 모은 ‘중국-5000년 전’ 등 그가 기획한 전시들은 곧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물론 그러한 논란은 반대급부처럼 남다른 화제성을 낳아 관람객의 폭발적인 증가를 초래했다. 이는 미술과 경영을 함께 공부한 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다.
현재 구겐하임은 특별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976년 저스틴 탄호이저 부부에게 기증 받은 세잔, 고흐, 마네, 피카소 등의 작품을 ‘탄호이저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공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초기 구겐하임의 기반 컬렉션이 된 ‘추상회화의 거장’ 칸딘스키를 비롯해 샤갈, 리히텐슈타인, 미로 등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들이 자리해 눈길을 끈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전시 공간, 나아가 특별한 발전상을 그리는 ‘프랜차이즈형 미술관’ 구겐하임은 여전히 탁월한 시대 감각의 체현자로서 충분해 보인다.